그는 ‘군대는 인생을 썩히는 곳’ ‘군 지휘부는 미국 바짓가랑이 잡고 거들먹거리는 집단’ ‘핵무기와 미사일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억제 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말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신 국방장관이었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1967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2008년 국방장관을 끝으로 군문을 떠나기까지 41년간을 줄곧 군에 몸담았던 국방·안보 전문가로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고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보수적인 군 고위 인사가 생각이 다른 대통령과 어떻게 같이 일했을까.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왜 다른 수행원들과는 달리 독야청청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아 ‘꼿꼿 장수’로 불렸을까. 정권이 바뀌면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된 지금은 어떨까.
국회의원 김장수(62). 2005년 초봄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던 그를 계룡대에서 처음 만났었다. 사회부장 시절이었다. 꼭 5년 만에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 534호실에서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정치인 김장수는 5년전에 비해 살이 조금 빠진듯 호리호리했지만 여전히 건강했다. 흐트러짐 없는 곧은 자세에서는 아직 가시지 않은 군인 냄새가 났다. 5년전 계룡대에서 만났던 추억을 같이 더듬었다. 초선 국회의원 2년차. 얼마나 변했을까.
“장군, 국방장관, 국회의원 세가지 직책 다 우연찮게 안보·국방 분야 업무를 했습니다. 군인으로서 최고의 계급인 대장, 직위로는 참모총장이 가장 영광스러운 직책이죠. 제일 어려운 건 국방장관입니다. 보수적인 군 출신 장관이 진보적인 대통령을 모셨습니다. 하루 24시간 청와대,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을 계속 접촉하면서 군을 위해 뭔가 해주길 요구하고, 해명하고, 오해를 풀고 하는 것이 장관인데 그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그의 회상에는 당시 대통령과의 갈등이 묻어나왔다.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전문적 식견도 부족하고 어떤 경우엔 체계적 지식이 부족해 역기능이 확대 재생산돼 나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투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치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점을 수없이 느낍니다.” 그의 말이 단순한 겸손으로 들리지 않은 것은 다음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일 어려운 것은 장관이고 육군 참모총장은 영광스러웠다고 봅니다.” 오랜 군생활에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군인이었다.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한 생각부터 묻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보수적인 군 출신 장관으로 노 대통령과 갈등이 많았을 텐데요.
“지금도 잘 모르는 게 그 부분입니다. 노 대통령이 날 껄끄럽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불신하면 난 사의를 표명하고 그만두면 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신뢰를 줬어요. 솔직한 대화도 있었지요. 한번은 대통령이 ‘군 지휘부가 미국 바짓가랑이 잡고 거들먹거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국무회의때 회의장 밖으로 나와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면 제가 예비역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죠. 그러자 대통령은 ‘대통령이 한 것이지 국방장관이 한 것이 아니잖느냐’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보고 ‘(예비역들이) 중립만 지키게 해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위험했던 상황도 더러 있었단다. 한번은 노 대통령이 계룡대에 내려와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같이 운동을 한 후 식사하면서 “육군은 예산을 안 주면 국방 개혁 못하겠다면서요”라고 했다. 아차 싶었던 그는 “우리가 예산을 자꾸 더 달라고 하는 것은 개혁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개혁하려다 보니 예산이 들어간다, 그래야 제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국방개혁을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는 거죠”라며 확인하고 건배를 제의했다. 북방한계선(NLL) 문제도 수없이 갈등이 있었단다. “국방장관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장관은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 라는 식으로 이해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의 결론이었다. 이제 본론인 천안함 문제로 들어갈 차례였다.
―천안함 사고는 군의 초기 대응태세가 엉망이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는 이 질문에 신경이 쓰였던지 돋보기 안경을 쓰며 준비했던 자료를 뒤적거렸다.
군의 잘못을 따지는 질문에 군 출신으로서 쑥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곤 다시 안경을 벗었다.
“다같이 반성해야 합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할 최대 서비스는 안보죠. 천안함 침몰사고를 안보 관점에서 보면 최대 서비스 분야에서 구멍이 뚫린 겁니다. 물론 원인은 모릅니다. 하여튼 군함이 그 지경에 이르렀고 초기 대응이 미숙했습니다. 정부는 이 기회에 위기대응, 위기관리 모델을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철저하게 재점검해야 합니다. 현재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게 아니고 국론이 두 동강 세 동강 나 있습니다. 억울하게 군은 군대로 당하고 있습니다. 매몰차게 뭐했느냐고 말이죠. 군은 군대로 안보태세분야를 재점검하고 정부는 토털 매니지먼트 개념에서 위기관리대응 매뉴얼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천안함 침몰사고를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지난 10년간 햇볕정책이나 대북 유화정책을 편 탓에 군의 안보태세나 기강이 해이해진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그도 일부분 책임이 있을 터였다. 그는 즉각 반론을 폈다. 부드러웠던 목소리가 이 대목에 이르자 커졌다. 얼굴도 다소 굳어졌다. 질문과 답변이 다소 논쟁적으로 흐른 것은 이때부터였다.
“단적인 표현으로 단정짓는 것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화해 협력과 군사대결 지양의 양대축은 김대중 정부때부터 죽 해오던 것 아닙니까. 노 대통령도 안보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몇번을 강조했습니다. 정권이 어떤 액션을 취하든 어떤 말을 하든 군은 본연의 임무인 외부 적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고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또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반론은 계속 이어졌다. “과거 10년간을 봅시다. 이지스함과 독도함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F15K는 누가 들여왔습니까. 물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시 결정적 대북정책의 흠은 이유야 어떻든 북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막지 못한 겁니다. 대북정책에서 보면 결과론적으로 잘못된 사안입니다. 만일 그때 보수정권이 있었으면 달라졌겠습니까.”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정책에 대해서는 동의했습니까.
“이미 정책이 결정된 상태에서 들어갔기 때문에 군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주국방 개념, 우리가 우리를 혼자 지킬 수 있다고 보나요.
“우리가 추진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가 혼자 자주국방하는 나라가 있습니까. 소설 열국지를 봐도 춘추전국시대 모든 나라는 패권국가에 의존해서 자기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제나라, 송나라, 정나라 할 것 없이. 완벽한 자주국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도 언젠가는 우리가 가져와야 합니다. 당시 한·미 양국 대통령이 합의해 2012년 3월15일에 이전키로 했는데 상황을 내가 장관으로 가서는 최대한 늦추자고 했고 그게 4월17일로 된 겁니다. 그 이유는 4월에 키리졸브 훈련이 있고 그걸 통해 최종 인증, 검증 훈련을 거치자는 뜻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정책은 전작권 전환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군 수뇌부를 지낸 그가 전작권 전환문제에 대해 무심할 리 없다. 전작권 전환 유예문제는 지금 한·미간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국면이다.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는 전작권 전환에 대해 양국의 학자, 전문가들이 유예하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전작권은 양국 대통령이 합의를 본 만큼 합의 날짜에 시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쌍방간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겁니다. 그게 우선 기본이고, 만약 전작권 인수 준비가 덜 됐다, 전작권 전환 이행계획을 시행하고 있는데 미흡하다면 그런 것을 제시하고 완벽히 보완하기 위해 몇년간 예산이 얼마 드니까 연기하자, 그래야 논리적이고 합리성이 있는 말입니다. 정치적인 이유건 군사적인 이유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대고 그걸 언제까지 해소한다고 전제하고 연기에 대한 토의를 해야 합니다.”
그는 전작권 전환 유예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유예에는 반드시 걸맞은 논리와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전작권 문제를 직접 다뤘었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안보상황 변화에 따라 재검토한다고 합의했습니다.
“최초에 전작권 전환에 대해 합의를 보고 합참과 미군사령관 간에 이행 서명을 할 때 2009년까지 최초운용능력(IOC·Initial Operational Capability)을 구비하고 2011년 말까지 완전운용능력(FOC·Full Operational Capability)을 구비한다고 정했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 결과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한·미간에 합의를 봐야 합니다. 양국 정부가 합의를 이끌어낼 과제입니다. 확신하는 것은 최초 시작이 양국 대통령이었듯, 연기하건 폐기하건 그 역시 양국 대통령이 합의할 사안이란 겁니다. 다만 유예를 제기하는 아쉬운 쪽이 비용을 대는 문제는 감안해야 합니다.”
―다시 천안함 문제로 돌아가보죠. 한국과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5개국 공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북한이 연루됐다는 증거가 나와 국제적으로 입증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는 잠시 눈을 비비며 머뭇거리더니 답변을 이었다. “조사 결과가 아직 안 나왔는데 북한 연루 문제를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며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어뢰에 의한 타격에 의심을 많이 품고 얘기했는데 저 역시 실증적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황적, 주관적 경험 논리를 갖고 한 말입니다. 그래서 북한 어뢰 공격의 가능성이 많다고 한 것이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북한의 연루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북한이 연루되면 너무 복잡해집니다. 남북관계는 끝입니다. 그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남북관계를 유지하겠습니까.” 그는 이 대목에서 다시 목소리가 많이 높아졌다. “만일 연루된 증거가 나오면 대책은 군사적 대응과 비군사적 대응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걸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군사적 대응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거죠.
“구체적 액션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군사적 대응은 리스크 관리를 염두에 두고 해야 합니다.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어렵지만 일전불사의 마음을 갖지 않고, 또 결심하지 않으면 군사적 대응은 제약을 가질 겁니다. 군사적 대응보다 더 무겁고 북한이 부담스러운 비군사적 대응이 뭔지를 동시에 발전시켜야 합니다. 국제 및 유엔 공조뿐만 아니라 중국 등을 통틀어서 훨씬 더 무거운 비군사적 대응을 감안해야 합니다.”
―천안함 침몰의 실체를 무엇이라고 진단하십니까.
“나도 정상적인 채널로 정보를 받는 것은 없습니다. 공개 첩보를 보거나 요구 자료를 보고 혼자 삭이는 것도 있고…. 상어급 잠수함은 거의 도태됐고, 로미오급, 위스키급이 있는데 상어급은 움직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정황상 내부폭발 가능성은 없고 어떻게 봐도 외부폭발인데…. 흔히 말하는 6·25때 매설된 기뢰가 지금 폭발한 것이냐, 1970년대에 매설된 폭뢰를 회수하지 못해 이제야 전기가 발생해 터진 것 아니냐, 북이나 3국에서 흘러나온 것이 있다가 폭발한 것 아니냐, 사고 전에 놓아둔 기뢰가 폭발한 것 아니냐 하는 추측들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나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가 있어야, 정말 기가 막히게 맞아야 가능한 겁니다. 어뢰는 플랫폼만 있으면 발사하는 것입니다. 잠수함이든 함정이든. 그거만 있으면 언제라도 발사 가능합니다. 잠수함이 아닌 잠수정이라도. 정말 은밀하게 정밀작전을 써서 한다면 못할 것도 아니죠. 저는 어뢰에 심증을 두고 있는데 증거는 조사해봐야 알 겁니다.”
―북의 도발이라면 주체는 누구라고 보십니까.
“북에서 볼 때 ‘남쪽 적’을 손바닥 보듯 보고 있습니다. (특정 군부대가) 움직이면 남쪽 적이 완전히 대비책을 세운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러면 성동격서는 아니지만 다른 곳의 추가 전력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할 겁니다. 기만작전과 양동작전, 그런 것은 예측이 가능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주시죠.
“총참모부 4군단 통제하의 짓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 정찰국 통제하에 할 수도 있고요. 필요하면 국방위 산하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쥐도 새도 모르게 하고 오리발을 내밀 수 있는 것이겠죠. 또 심증이 나오면 맹동분자의 과잉충성이라고 내밀 수도 있고, 얼마든지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기다려볼 수밖에 없습니다.” 김 의원의 분석은 풍부한 군경험에도 불구하고 무척 조심스러웠다. 천안함에 대한 ‘갈증’을 풀기에는 다소 모자랐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양념 질문을 던졌다. 친이명박인지 친박근혜인지.
“누가 묻더라고요. 친이계인지, 친박계인지. 보통 언론은 저를 순수중립으로 분류합디다. 굳이 친자를 붙여 분류하려면 친군(軍)으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맺음말이 걸작이었다. “현실적으로 친이, 친박이 있긴 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소주 한잔 하자”며 악수를 건네는 그는 천생 정치에 물들지 못하는 타고난 군인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